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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생각

나는 이타적인 개인주의자입니다

by 바나나맛완 2026. 4. 7.
목가적인 삶의 대표주자 우리 자두

나는 이타적인 개인주의자입니다.

얼핏보면 ‘이타적(利他的)‘과 ‘개인주의(個人主義)’는 좀처럼 어울리지 않는 말처럼 보인다.
이는 집단이 우선인 동양의 문화 중에서도 특히나 단체 생활이 중요한 한국의 정서상 ‘개인주의’라는 말이 달갑게 느껴지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개인주의는 결코 나쁜말이 아니다. 단체와 조직생활을 부정한다는 말이 아닌, 우리가 이 세상에 각자의 개체로서 독립적으로 서있음을 인정하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작은 섬들이 모여 군도를 이루고, 작은 나무들이 모여 숲을 이루는 것처럼 말이다. 개인이 있어야 그 다음 단계인 집단이 있다.

하지만 한국에서 교육을 받고 30년 넘게 살아온 입장에서 사회 통념에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다. 그렇다보니 나도 나의 성향을 규정하는데 꽤 애를 먹었다. 마땅히 설명할 단어가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다 이타적인 개인주의라는 말을 접했고, 머리가 번뜩였다. 이거다!

나는 (당연하게도) 타인을 존중한다. 그리고 모두의 안녕을 기원한다. 팀에서도 모두의 행복(공리)이 중요하고 이를 위해 어느정도 희생(손해)도 감수할 수 있다. 오히려 어느정도 손해를 보는게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왜냐면 사람은 대부분 이득 보단 손해만 기억하기에 본인이 어느정도 손해를 봤다고 느껴야 제3자가 객관적으로 봤을때 그제서야 이득과 손해의 균형이 얼추 맞을거다.

하지만 동시에 내 독립성이 침해 당하는 것이 극도로 싫다. 분명 같은 업무를 하는 같은 ‘사람’인데 연차가 높고 낮다는 이유만으로 그 사람 고유의 권리나 존중의 정도가 달라지는건 납득하기 어렵다. 우린 마땅히 각자 존중 받아야 할 개인이기 때문이다.

서로가 침해할 수 없는 다른 각자이기 때문에 상대방에 대해 관심도 별로 없다. 물론 친한 사람의 경우 서로 많은 관심을 쏟지만, 친하지 않거나 혹은 일만 같이 하는 직장동료의 관계에선 업무 외적으로 크게 관심이 없다. 서로의 영역이 있는 것이고 이를 마땅히 존중한다. 먼저 말하지 않는 이상 먼저 묻지 않는다. 나에 대한 사적인 질문을 꺼리는 편은 아니라 답은 해도 반대로 상대방의 사적인 부분을 되물어보진 않는다. 왜냐면 나는 상대방이 딱히 궁금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성향이다보니 가끔은 내 스스로 혹여 사회성의 문제는 아닌가 자문해보기도 한다. 하지만 답은 언제나 똑같다. 이타적인 마음을 가지고 각자의 경계를 존중하는 것이 문제가 될 수 없다. 이것이 문제라고 생각되는 조직이 있다면 그 조직이 너무 집단주의 성향이 강한 것이 아닐까?

난 앞으로도 이타적이면서도 나와 당신의 경계, 그리고 각자의 고유한 존엄성을 존중할 것이다. 집단이라서, 선배라서, 후배라서, 상사라서 당신의 개인주의를 훼손하지 않을 것이며 훼손 되지 않을 것이다.

오늘도 이타적인 개인주의로 홀로선 핵개인들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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