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회사에 명예퇴직과 희망(을 강제하는) 퇴직을 단행했다.
회사엔 나가주었으면 하는 사람들의 명단이 있었고, 그 대상자가 희망하지 않을 경우 강제로 퇴직을 희망하게끔 하는 사실상의 해고나 다름없는 제도다. 잔인한 눈치싸움을 2~3주 정도 하다 보면 이내 누군가 대상자가 되었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한다. 그리고 사직서를 받으러 소위 '저승사자'라고 불리는 이들이 움직기 시작한다.
그런데 나는 최근 이 이벤트를 옆에서 지켜보면서 묘하게 어그러진, 그러니까 대체로 앞뒤가 맞지 않는 직원들의 행동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것은 바로,
<< 회사에서 존속되길 원하면서 동시에 자신의 존재를 지운다는 것이다. >>
우리나라는 연공제가 당연시되는 문화가 자리잡았다. 생애주기상 초반엔 고생을 하고 후반으로 갈수록 보상을 받는 체계가 만연하다는 뜻이다. 이는 조직 내에서의 역할에서도 나타난다.
해가 거듭하여 쌓이는 연차에 반비례하게 실무는 점점 줄어든다. 귀찮거나 최대한 피할 수 있는 일들은 저년차들에게 넘어가고 본인은 최소한의 일만 관여하게 된다. 이 모든 행위들은 "나도 그 연차땐 선배들 일 다 했어" 혹은 "내 짬에 그 일을 해야 해?"라는 언어로 정당성을 얻는다. 관리자급으로 넘어가기라도 하면 '관리'라는 명목하에 실무는 아예 사라지고 '말로만 하는 관리'가 주를 이루게 된다. 그러면 조직의 대부분의 일들을 중간 이하의 연차들이 도맡아 하게 되는 희한한 구조가 완성된다. 이렇게 연차가 쌓일수록 그들은 스스로 자신의 존재를 철저히 지우기 시작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연차에 비례하여 연봉은 높아졌는데 회사에 기여하는 바는 적은 '최악 효율의 직원'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그리고 회사는 기가막히게 냄새를 맡고 이런 사람들을 솎아낸다.
이들의 진짜 문제는 퇴직후에 있다. 40대 후반 ~ 50대 초반에 소속을 잃은 이들은 크게 동요하고 방황한다. 그동안 회사와 조직의 타이틀 뒤에 숨어, 나이와 높은 연차의 뒤에 숨어 자신들의 이름을 지워왔는데 이제는 자신의 이름으로 홀로 서야 하는 상황에 맞닥뜨리게 된 것이다. 평소 자신의 이름을 지워온 이들은 갑작스럽게 찾아온 홀로서기가 익숙지 않다.
난 이와 대조되는 경험도 한 적이 있다.
아내는 외국의 임상실험을 설계하는 회사와 자주 미팅을 한다. 그러다보니 해외의 다양한 사람들과 화상회의를 할 기회가 많은데, 실무자들 중엔 나이가 많은 사람들이 꽤 많다는 것이다. 우리로 치면 부장급 되는 연차 혹은 나이의 직원들이지만 대등하게 본인만의 실무를 하고 있다. 한국에선 실무자로 나이가 많은 사람이 들어오는 건 흔치 않아서 흥미로웠다고 한다.
이렇게 본인이 실무에 기여하면서 본인의 일을 해오기 때문에 이런 사람들은 오랫동안 자신만의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일선에서 빠지고 뒤에서 이름도 지우고 숨죽여 회사의 눈을 피하려는 사람들과는 다른 경쟁력을 갖고 있다.
언제 한번 직장 선배에게 불만을 토로한 적이 있다. 부장님도 그 자리에서 합당한 대우를 받으려면 회의 자료 정도는 스스로 만들어야 하지 않겠냐고. 돌아온 답변은 이랬다.
"너도 저 짬 되어봐 얼마나 하기 귀찮은데, 그리고 그 동안 많이 했으니 이런 건 아랫사람들이 해야지".
무서운 말이다. 마치 전역을 앞둔 병장을 대하듯 말한다. 군생활은 전역이라는 '끝'이 있다. 그런데 직장에 저런 한계를 둠으로써 스스로 직장생활의 '끝'을 앞당겨 오고 있다.
저자 송길영 작가의 "시대예보 : 호명사회"를 보면서 내 이름을 잃지 않고, 떳떳이 스스로 자립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금 생각해 볼 수 있었다. 회사와 조직이라는 거대한 이름 앞에 내 이름을 잃지 않고 독자적인 경쟁력을 만들어가는 것. 그것이 호명사회다. 일을 피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나의 근거를 쌓아가는것, 연차와 나이가 아닌 각자의 독자성을 존중하며 수평적 연대를 만들어 가는것, 그 속에서 함께 경쟁력을 키우는 것이 중요한 시대가 오고 있다. 단순히 '퇴사하여 내 것을 찾으라'는 소리가 아니다. 내 이름을 걸고 일을 할 때 나의 성장에도, 조직의 성장에도 이롭다는 것이다.
회사가 우리를 정의해주는 시대는 저물어 가고 있다. AI의 발달, 미디어의 발달, 이미 연결되어 버린 전 세계. 100세 시대의 도래와 50세면 퇴직을 해야 하는 한국의 현실. 호명사회에 대한 준비는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다.
자, 이제 스스로에게 질문해본다.
나는 내 이름으로 불릴 수 있는 사람인가?
나는 회사가 아닌 무엇으로 설명되는 사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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