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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사는 이야기

바다거북이를 생각하다 - 취업에 대한 단상

by 바나나맛완 2020. 10. 29.

청년 실업률은 매년, 매순간 최고치를 갱신하고 있다. 어제 만든 모래 둔덕보다 더 큰 둔덕을 오늘 당장 만드는 황량한 사막처럼 딱히 달갑지 않은 기록이 매일 새로 생기고 있다. 어떻게 보면 출생아의 수가 줄어들고 우리네 곁에 아기 우는 소리가 줄어드는건 당연한 수순인지도 모르겠다. 이제 자연히 인구가 감소하는 나라에 살고 있다니,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다.

나 또한 구조적인 문제와 코로나19까지 겹친 유래없는 취업난을 온몸으로 받아내고 있다. 숨이 턱턱 막히는 각종 지표들을 보고 있자면 용기도, 희망도, 의지도 모두 꺾여버리는 것 같아 뉴스 보기가 무서운 그런 나날을 보내고 있다. 경력이 있기에 괜찮을 것이란 생각은 착각에 가까웠고, 취업을 준비한다면 누구나 느끼는 불확실성과 불안함을 오롯이 느끼고 있다.

하지만 동시에 이렇게 있을 수 만은 없다고 생각한다. 다시 의지를 불태우고 혹시 모를 단 1%의 기회라도 잡기 위해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열심히 찾아보고 생각하고 도전한다. 그리고 바다거북이를 생각한다.

멕시코의 서핑으로 유명한 Puerto Escondido(뿌에르또 에스꼰디도; 숨겨진 항구)에서 처음으로 새끼 바다거북이를 봤다. 멕시코 교환학생 당시 서핑을 배우기 위해 일주일간 놀러갔지만 정작 이 여행의 하이라이트이자, 내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준건 이 조그마한 새끼 거북이었다.

 

 

당시 해변에서는 50페소(MXN)를 내고 부화한 새끼 바다거북이를 바다로 돌려보내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멸종 위기에 처한 바다 거북이의 개체수를 늘리기 위해 어미 거북이가 산란을 하면 알을 따로 보관하고, 부화할때까지 안전하게 지켜준다. 그리고 갓 부화한 새끼 거북이들은 사람들의 손에 의해 바다로 방생된다.

나도 바다 거북이의 보존에 기여하고 싶어 프로그램에 신청했고, 작은 바다 거북이를 받게 되었다. 조그만 두레박 안에 들어 있는 갓 태어난 새끼 거북이. 10cm 남짓한 새끼 거북이는 당시의 나보다 더 힘차보였다. 앞을 향해 나아가려는 본능, 생(生)의 활력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곧 시간이 되었고 바다거북이와 작별 인사를 해야 했다. 출발선에서 모두가 새끼 거북이를 놓아주었고. 거북이들은 힘차게 바다를 향해 뚜벅뚜벅 걸어 나갔다. 바다거북이는 부화 후 성체가 될 확률이 단 2%에 불과하다고 한다. 바다로 가는 도중에 새들에게 잡아 먹히고, 바다에 들어가서도 각종 물고기들과 포식자에게 먹힌다. 어찌보면 바다는 지상만큼 불확실하고 위험한 곳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동시에 살아갈 배경이자 기회의 장소인지도 모른다.

10cm 남짓의 작은 바다거북이는 바다의 불확실성, 위험에 주눅들지 않고 확신에 찬 발걸음으로 바다를 향해 내딛는다. 작은 몸짓 하나하나엔 확신이 있었고, 결의가 있었고, 용기가 있었고, 희망이 있었다. 설령 고달픈 상황과 결코 원치 않는 결말에 마주할지라도 이들은 한치의 망설임 없이 바다에 뛰어들었다.

 

 

 

경외감이 느껴졌다. 이 순간 만큼은 내가 10cm에 지나지 않은 하찮은 존재였고 거북이는 3척의 경의로운 존재가 되었다. 그리고 세상에 뛰어들기 바로 직전에 있었던 나는, 바다로 돌려보낸 나의 거북이를 꼭 마음 속에 간직하고 잊지 않겠다며 다짐했다. 정말 깊이 간직하고자 했다. 

 

 

요즘 나의 거북이가 자꾸만 생각난다. 취업을 위한 수 많은 전형들, 바늘 구멍이 되어버린 입사의 문, 성공보단 숱한 거절과 실패가 더 익숙한 작금의 상황. 나는 바다를 향해 뛰어들던 수 많은 새끼 거북이들 중 하나가 된 것만 같다.

용기를 잃을 때도 있다. 물론 좌절할 때도 있다. 다시는 일어서지 못 하는게 아니라, 일어서고 싶지 않을 때도 있다. 하지만 나는 나의 거북이를 기억하고자 한다. 그리고 끝까지 용기를 잃지 않겠다.

어쩔 땐 거친 파도에 휩쓸려 곤경에 처할지도 모른다

어쩔 땐 도저히 만나고 싶지 않은 천적을 만나 위험에 처할지도 모른다

내가 원하는 바다를 향해 수없이 발을 내젓지만, 결국 그 곳에 당도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힘겹게 당도한 바다는 내가 원하지 않는 곳일 수도 있다

하지만 결국 끝끝내 살아남는 한 마리의 바다거북이가 될 것이다. 그렇게 될 것이다.

 

(현시대를 살아가는, 살아내는 모든 취준생들이 힘을 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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